'아름다움'에 관한 우리의 착각. <아메리칸 뷰티> by 고민인김씨

이것은 한 남자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이것은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한 마을의 이야기도, 한 도시의 이야기도 아니다. <아메리칸 뷰티>. 영화배우 케빈 스페이시에게 무려 5개의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 영화는,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연기하는 그들은 저마다 다른 욕망을 품고 있다. 이 세상을 연기하듯 살아가는 우리가 으레 그런 것처럼.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의 바깥에 있는 나는 그들의 욕망 하나하나를 열거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의 설명서를 만들고픈 욕망은 없다. 그냥 간단히 말해야겠다. 누군가는 자신을 찾는 것, 누군가는 자신을 속이는 것, 누군가는 자신을 이기는 것을 욕망한다. 진짜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욕망과 진짜 아름다움이 되고자 하는 욕망도 등장한다. 오만가지의 욕망들. 그 욕망과 욕망들이 얽히고 추돌하며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 속에 어떤 욕망들이 존재하는지 아는 것은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영화 속 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다. 그리고 그 욕망을 알면서 모른 체 하는지, 그 욕망을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지 여부다. 자신의 욕망을 알고 있는 자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자신의 욕망을 굳이 숨기는 자가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가 바로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다. 안다고 하여 무조건 행복한 것이 아니고, 모른다고 하여 무조건 불행한 것도 아니다.

영화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아름다움(beauty)'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움'은 누군가가 가진 욕망의 대상이거나, 추악한 욕망을 포장하는 도구로서만 존재한다.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쏟아지는 장미'가 바로 아름다움을 가장한 추악한 욕망의 파편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진짜 아름다움은, 15분 동안 바람을 따라 빙글빙글 날아다니는 하얀색 비닐봉지다. '쏟아지는 장미'나 하얀색 비닐봉지나, 그와 관련된 시퀀스에 퍽 공을 들인 티가 난다. 그러나 감독이 무엇을 원했건 간에 결국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딸의 친구와 처음으로 키스하는 장면 직전, 영화가 관객에게 묻고자 하는 질문이 나왔다고 본다. "그럼, 말해봐, 넌 뭘 원해? / 모르겠어요 / 모르겠다? / 아저씨는요? / 몰래서 그래? 난 널 원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던 주인공이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일종의 각성을 거쳤지만, 아직까지 그 실체를 모두 파악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대화다. 이어지는 대화. "넌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 그저 그렇지 않고요? / 너랑 안 어울리는 소리야 / 고마워요. 평범한 것보다 슬픈 것은 없잖아요." 각자가 자신의 욕망을 '아름다움'이란 개념으로 전용하고 있다.

결국 둘은 함께 눕는다. 주인공은 딸의 친구를 눕히고, 옷을 벗겨 나신을 드러내 보인다. 여자는 말한다. "이게 제 첫경험이에요." 남자는 더 이상의 행위를 멈춘다. 실은 둘은 더 이상 행위를 이어갈 이유가 없다. 둘은 이미 자신의 욕망을 채운 것이다. 진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주인공의 욕망과, 진짜 아름다운 존재가 되고 싶은 여자의 욕망 말이다. 다만 각자의 그 욕망이 채워진 데는 서로가 서로의 계기가 됐음이 분명하다.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흘러가던 영화를 단호하게 끝내버린 장본인은 자신의 욕망을 끝내 숨기려고 했던 자다. 동성애자인 자신을 평생에 걸쳐 부정한 그는, 해병대에 지원하고 총기를 수집하고 동성애에 대한 저주를 일상적으로 퍼부으며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고 또 부정한다. 굳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그의 행동에 붙여 보자면, 그는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눈을 감고,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에 대한 욕망을 들켜버리자, 그 욕망을 목격한 사람을 살해해버린다.

주인공이 죽기 직전 보았던 주마등이 열거되며 영화는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그것은 아마도, 욕망이 제거된 후에 남은 기억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올려다보았던 밤하늘, 집 앞 도로에 늘어선 단풍나무, 메마른 할머니의 손과 살결, 사촌이 처음 샀던 멋진 자동차, 딸과 아내의 예전 모습들. 그렇게 욕망이 제거되고 남은 흑백의 장면들에는 주인공의 욕망따위는 투영돼 있지 않다. 마치, 옆집 소년의 캠코더에 담겨 있던 그 하얀 비닐봉지처럼.

결국 우리도 보게 될 것이다. 욕망의 이면에 남겨진 진짜 아름다운 기억들을. "난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으며 살아가는 우리지만, 결국엔 자신도 모르게 욕망은 우리 안에 기생하고 때로는 우리를 잠식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결국엔 추악한 우리의 욕망을 포장하고 있는 기제일 수 있고, 우리가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들이 결국엔 정말 우리가 욕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살아있는 우리는 결국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끝내는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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