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3 01:59

<도가니>. 온갖 부정과 부패, 비리와 타락이 한몫에 뒤섞여 악취를 풍기는 도가니. 영화와 책과 음악

 <도가니>는 공지영이 과거를 꺼내든 소설이고, 황동혁이 그것을 또다시 꺼내든 영화다. 누군가 짧게 평하기를, 소설은 현실의 1/4을, 영화는 소설의 1/4을 그려냈단다.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본 나는 고작 1/4의 1/4이 보여주는 그 참혹하고 역겨운 광경에 압도되어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영화 속에서는 자애학원이고 현실 속에서는 광주 인화학교로 알려진 이곳의 사건일지를 펼쳐보자. 이 학교는 농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학교는 기독교 장로를 교장으로 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간단히 세 음절로 표현되지만 그것을 당해본 이들에겐 결코 간단하지 않은, 그 '성폭력'이 대략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학교의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몇몇 교사들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나이의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들을 저질렀다. 

 '저질렀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그들의 행각. 마치 겨울밤의 시멘트 벽처럼 차가운 색감의 극장 스크린에서, 우리는 어렵게 어렵게 눈을 치켜뜨고 그 '짓'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출렁이는 배와 허벅지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짐승을 느끼며 경악했다. 어떠한 이유도 가져다 붙일 수 없고, 어떠한 변명도 가져다 붙일 수 없는 금수로서의 몸짓은 그 자체만으로도 죽어 마땅한 죄처럼 보였다.
 지역의 경찰과 교육청이 수수방관하는 가운데, 백방으로 뛰어다닌 인권단체의 노력으로 결국 그들은 구속된다. 하지만 <도가니>의 진수는 바로 여기서부터다. 쇠붙이를 녹이는 그릇, 도가니. 공지영이 쓰고 황동혁이 찍은 도가니는 대한민국이 현재 지니고 있는 온갖 부정과 부패와 비리와 타락과 탈선이 한몫에 뒤섞여 지독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도가니다. 그 더러운 재판의 과정을 몇 가지 단어로 요약해 나열하자면, 그것은 전관예우와, 뇌물, 협박, 돈, 거짓, 종교, 기만, 공모, 음모, 탐욕이고 다만 존재하지 않는 것은 죄책감이다. 인간이 아니다.

 극장의 관객들은 연달아 탄식했다. 그들과 내가 전율한 1/4의 1/4. 피해 당사자인 그 아이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듣지도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그 온전한 100의 무게 앞에서, 그 누가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는 소설과 영화로 그 아이들의 참담한 고통과 공포를 추측해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과 종교과 사법부가 똘똘 뭉쳐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본다. 아이들의 아픔을 쓰다듬어주고 사건을 해결해 뿌리뽑아야할 주체들이 그 사건의 한가운데 연루되어 있는 이 참혹한 현실을 본다. 그리고 막다른 길과 목을 죄어오는 손아귀를 느낀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화만 내고 있다보면 또 다시, 또 다시.

 2010년 7월에도 성폭력은 재발했다고 한다. 2000년부터 2004년의 일이건, 2005년의 일이건, 그리고 2010년 7월의 일이건, 우리는 그저 목도하며 한숨만 뱉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나머지 시간의 공백에서 더 발견될 수도 있는 또다른 성폭력들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공무원들의 비리와 횡령과 배임과 수뢰가 143% 증가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그 막다른 골목의 담벼락은 더욱 높게 느껴진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요즘 세를 넓히고 있다는 그 학교에 대한 수사가 속개되었으면 좋겠다. 진실과 정의가 꼭 승리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소망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나는 공지영 작가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조별 발표를 하고 C+을 받은 적이 있어서 나쁜 이미지가 박혔는지 뭐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계기로, 그리고 소설이 영화보다 훨씬 깊고 방대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친구의 말을 계기로, 나는 공지영 작가를 존경하기로 했다. 마치 조정래처럼, 마치 박완서처럼,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아픔과 염증을 위로하고 고발하는 문학을 쓰는 작가. 그런 작가들이 진정으로 문학을 빛나게 하고, 사회를 문학으로써 찬란하게 만든다. 그녀를 읽어야겠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깊숙이 와닿았던 대사.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새기고 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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