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당 이합집산사, <일본 전후 정치사> by 고민인김씨

한 문장으로 정의내리자면, 이 책은 ‘패전 이후 일본 정당(政黨)들이 겪은 구체적인 이합집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다음날인 8월 15일에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를 수상으로 세운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뤄지고 있는 일본 내각, 일본 정당의 역동적이고도 치열한 이합집산의 역사다.

일본의 전후(戰後) 정치사를 살펴보려면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를 우선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8월 전반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각각 한 발씩의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은 결국 연합군에 항복한다. 그 때는 이미 7월 26일에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패전 후의 일본에 대한 논의를 모두 마친 뒤였고, 일본은 이에 따라 연합사령부에 의해 점령된다. 맥아더 사령관은 군정을 선포하여 일본을 직접 통치하여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9월 3일 이를 공식적으로 포고하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전날인 2일, 이 방침을 전해들은 일본 정부의 강한 반대 요청이 있었다. 맥아더는 결국 이를 받아들여 일본 정부를 통한 간접 통치의 형태를 취하기로 했다.

또한 패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중신들의 관심사는 오직 국체(國體)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일, 즉 ‘국체호지(國體護持)’에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국체란 한마디로 대대로 내려온 유일혈통인 천황에게만 통치권이 있다고 간주하는 국가의 정치체계라고 할 수 있다. 점령군은 일본인들이 희구한 이 국체호지의 의지도 받아들여 헌법 제정에 있어 일황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점령군은 위와 같은 두 가지 전제를 기반으로, 일본을 빠르게 개혁한다. 최종 목적은 일본의 비군사화와 민주화였다.

미군에 의해 <치안유지법>을 비롯한 ‘사상, 신앙, 집회, 언론의 자유에 대한 통제를 확립·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15개 법률과 관계법령이 폐지되었다. 또한 특별 고등경찰 등 사상경찰이나 내무성 경보국 등의 기관도 폐지되었다. 그리고 내무상, 내무성 경보국장, 경시총감, 오사카 부 경찰국장, 도부현의 각 경찰국장, 대도시의 경찰부장, 도도부현의 각 경찰부 소속 특수경찰 등 약 4,000명이 파면 및 해고되었다. 그리고 10월 10일 이후로 2,465명의 정치범, 사상범이 석방되었다. (37쪽)

이러한 민주화 과정에서 패전 후 첫 내각이었던 히가시쿠니 내각은 총사직했고, 일황은 연합군 총사령부의 양해를 얻어 후속 내각의 수상으로 시데하라 기주로를 임명했다. 맥아더는 시데하라에게 ‘인권확보 5대 개혁’을 지령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패전 직후 연합군, 그중에서도 미군이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일본의 전후 정치사는 미국을 빼놓고서는 설명할 수 없고, 이 명제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미군의 입김은 1946년 4월 10일에 있었던 패전 후 첫 총선에도 절대적이었다. 연합군 총사령부는, 1946년 1월에 총선을 치르겠다는 일본 내각의 결정을 연기하고 총선 전에 공직추방령을 준비해 연합군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정당의 결성과 재편도 활발하게 일어난다. 총선 직전의 시기에 일본사회당, 일본자유당, 일본진보당, 일본협동당, 일본공산당 등이 결성된 것이었다. 총선거를 통해 형식상의 주권이 최초로 일황에게서 국민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 갖는 의의는 매우 큰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점령군에 의한 강제적인 개혁이었다는 한계를 갖지만, 이를 계기로 일본은 ‘현대’ 사회에 진입한다.

그러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일본의 각 정당들은 파벌을 형성하고 분열을 겪고 각종 부패에 물든다.

아시다 내각은, 연합국 총사령부 내의 파벌투쟁까지 동반한 쇼와전공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10월 7일 총사직했다. 7개월이 조금 넘는 수명이었다. 이 사건은 식량 증산에 필수적인 화학비료 제조사였던 쇼덴이 훗코금융금고에서 자금을 빌리기 위해 정부요인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것이다.(74쪽)

아시다 내각의 뒤를 이어, 민주자유당 총재인 요시다 시게루가 1948년 10월 19일 제2차 내각을 출범시켰다. 소위 ‘야마자키 수상 옹립 시도’는 바로 그 직전에 벌어졌다. 민정국 국장 화이트니, 차장 케디스 등은 요시다를 일본의 구세력 중에서 가장 반동적인 인물로 간주하고, 그 배경에는 참모 제2부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요시다 대신 민주당 간사장이었던 야마자키 이와오를 수상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75쪽)

민주당은 3월 26일부터 공식적인 분열이 시작된다. 약 1년 후인 1950년 2월 연립파 중 22명이 민자당에 합류했고, 3월 민자당은 당명을 ‘자유당’으로 개칭했다. 또한 야당파는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던 국협 등과 더불어 1950년 4월 29일에 국민민주당을 만들었고, 1952년 2월 8일에는 이를 개진당으로 개칭했다.(82~83쪽)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이른바 ‘한국전쟁 특수’를 누리며 변화의 기회를 맞이한다. 한국인들이 흘린 피의 대가라는 사실에 일부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국전쟁 특수는 결과적으로 일본 경제를 활성화시켰고, 이는 1950년대 후반 이후 고도성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한국전쟁을 계기로 당시 일본이 바라고 있지 않았던 재군비도 사실상 시작되었다.

결국 일본은 전쟁의 패배로 연합군에게 점령되었지만 사실상 냉전의 최대 수혜국이 된 셈이었다. 점령군에 의해 민주화와 비군사화를 이룩하고 국방비 절감과 한국전쟁 특수로 급격한 경제성장까지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국전쟁은 일본의 경제성장에도 크게 기여하였지만 총사령부의 반공 색채를 강화시키면서 일본의 정치 지형 또한 보수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총사령부는 냉전의 격화에 발맞춰 반공의 색채를 강화하고 있었다. 1950년 6월 6일 맥아더는 서간을 통해 공산당 중앙위원 24명 전원의 공직추방령을 지령했다.(90쪽)

패전 후의 미군의 점령, 한국전쟁, 일본의 UN가입 등을 거쳐 1955년 일본은 ‘55년 체제’로 진입한다. 55년 체제란 일본에서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야당인 일본사회당의 양대 정당 구도가 형성된 체제를 말한다. 1955년 이전에는 보수 정당들이 미군의 선별작업 속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과정이었다면, 1955년 이후부터는 국민들이 꾸준히 진보 세력에 지지를 던지는 가운데서 사회당과 자민당이 끊임없이 파벌을 형성하며 투쟁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55년 체제에서 주목해야할 인물은 이케다 하야토 수상이다.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이케다 내각은 전체 기간 동안 지지율이 지지하지 않는 비율보다 낮게 나타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수치는 하토야마 내각에서 미야자와 내각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민당 내각 가운데 이케다 내각이 유일하다. 그것은 이케다 수상 재임 기간 동안, 일본은 경제 성장에 있어 가히 놀라운 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1956년 이후부터 선박 건조에 있어 세계 최고가 되는 등, 그동안 일본의 공업생산력 신장은 이미 현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1954년부터 1959년까지 5년간의 국민소득은 6조 5,917억 엔에서 11조233억 엔으로 67.2%가 상승했다. 연평균 10.8%의 증가율이었다. 이러한 경제 성장 성과와 높은 지지율은 한국의 박정희를 연상시킨다.

55년 체제 안에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고, 미국을 포함한 서구 열강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OECD에 가입한 선진국으로서 보수화된 일본은 여러 가지 경제 환란이나 국제 전쟁을 겪으며 조금씩 전범 국가로서의 낙인을 떼어내려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막대한 자본으로 걸프전을 지원하고,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하는 행동 등을 조심스레 실행하며 군비를 금지하고 있는 헌법9조의 개헌 또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일본의 현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책 <일본 전후정치사>는 패전 이후부터 일본이 겪어온 정당 이합집산의 역사를 짚어본 책이다. 책에는 생소한 정치가의 이름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꽤나 복잡한 일본 정당의 역학 관계를 소개하고 있어 관련된 지식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이 책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꼼꼼히 읽어 본다면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몇 가지의 요점들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내각과 정당들은 보수와 진보의 지향점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웠다는 것과 패전국이라는 낙인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 군비와 핵보유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 관계들은 한국 정치 상황에도 크고 작은 영향들을 미친 바 있어, 한국인에게도 큰 의의를 갖는다. 연합군에 의한 일본의 패전과 한국전쟁 특수를 이용하는 일본의 모습은 물론, 일본이 진보와 보수의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한국도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인접국으로서, 세계 사회 속에서 위상 높은 경제대국으로서, 형식적으로는 군인을 기를 수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사 대국인 나라로서의 일본에 대한 책. 책은 어려웠다. 수상의 교체와 정권의 이합집산을 따라잡느라 너무도 숨 가빴던 책이었다. 그런 숨 가쁜 독서 속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간 부분도 참 많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체적인 일본의 정치 지형과 그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좋은 책이었다.


(김정석, <일본정치론> 수업 과제)



덧글

  • 여강여호 2011/05/10 16:58 # 삭제

    우리가 그대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지않나 싶네요..
    어쩌면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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