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무산-자로부터 쓰여진 일기. <무산일기> by 고민인김씨

 폐허와 흔들림, 그리고 뒷모습. 127분을 관통하는 영화는, 무산(茂山)에서부터 시작되어 휴전선의 이남에까지 와 닿았지만, 아직 승철은 무산(無産)에 머물러 있다. 이것은, 무산-자로부터 쓰여진 일기다.

<두만강>에서 <무산일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독립영화들은 이북의 인민들과 두만강을 건넌 탈북자들, 목숨까지 걸고 이남으로까지 넘어온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런 영화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분명, <의형제>나 <간첩 리철진>과는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은 훨씬 더 냉혹하고 잔인하다. 탈북자들이 등장하는 여느 상업영화에서는 탈북자의 단독성을 부각하고 있지만, <무산일기>는 탈북자 개개인의 단독성보다는 탈북자들이 처한 구조적 현실을 부각시킨다.
 승철은 말 그대로 "먹을 게 하나도 없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탈출하여, 이남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이곳은 경쟁과 돈과 계급만이 존재하며, 승철을 포함한 모든 탈북자들은 이 구도에서 언제나 패배한다. 돈 때문에 서로를 살해하는 현실 속에서 탈북자라는 낙인은 승철에게 전단지 붙이기나 노래방 알바 따위의 일거리 이외에 어떤 일자리도 허용하지 않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와의 관계조차도 고용인-피고용인의 계급 구도 속에서밖에는 존재할 수 없없다. 결국 승철이 목숨을 걸고 선택한 것은 또다른 의미의 궁핍과 허기짐에 지나지 않는다.

 김인환은 이렇게 말했다. "한 편의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작품의 구성과 문체를 분석해야 한다. 한 편의 소설을 읽을 때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뼈대에 해당하는 측면을 구성이라고 하고, 섬세하게 정독하지 않으면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을 문체라고 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주로 뼈대인 구성에 의존하지만, 한 편의 작품을 바로 그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은 언뜻 보아 이야기에 필요 없는 듯이 여겨지는 문체이다. 창작이란, 예측할 수 있는 구성에 예측할 수 없는 문체를 써 넣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소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에서도 예측할 수 있는 '내러티브'와 예측할 수 없는 '미장센'이 함께 존재하는 까닭이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세 글자, '125'로 대표되는 탈북자들이, 홀로 살아내기도 버거운 경제적 궁핍 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욕망과 격렬히 부딪치며 비극을 겪는 <무산일기>의 내러티브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박정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실제 친구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이 이 예측 가능성의 반증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것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무산일기>의 흔들거리는 핸드 핼드 카메라 워크는 폐허와 철거촌, 남자의 뒷모습과 이북 사투리, 유흥가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에 비치는 초고가의 명품들을 한 데 뒤섞으며 <무산일기>만의 문체를 만든다. 그리고 이 문체가, 관객들이 읽어야 할 영화의 독법이 된다. 
  
 이 영화를 읽는 법. 그것은 카메라를 읽는 것이다. <무산일기>의 카메라는 거개의 경우 감독의 시선과 일치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박정범 감독이 연기한 박정범 감독의 친구 故전승철이고, 카메라의 시선은 故전승철을 연기하고 있는 박정범 감독이 자신의 연기를 통해 故전승철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다. 카메라는 폐허를 헤집으며 걷고 있는 승철의 뒷모습을 흔들거리며 잡아내고, 백구와 함께 뉘여진 장롱 속을 마치 입관하듯이 들어가는 장면을 바깥에서 내려다본다. 그리고 카메라는 종종, 승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마치 감독이 자신의 친구를 종종 '어떠한 이유로' 쉽사리 쳐다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카메라는, 결말 부근에서 승철이 함께 살던 탈북자의 돈을 가지고 도망친 이후부터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마지막 5분. 카메라는 숨죽이며 멈춰서 승철을 먼 발치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승철은, 차에 치어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있는 백구를 바라본다. 승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승철을 연기하는 감독은 카메라 앞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과 정신없이 지나다니는 차량들의 행렬 사이에 단 한치의 무덤 하나 얻지 못하고 누워있는 믹스견의 최후는, 그 자체로 탈북자의 죽음과도 같은 삶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아무런 음악도 울려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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