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오이디푸스, <괴물들이 사는 나라> by 고민인김씨

 영화에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소년이 있고, 소년의 어머니와 누나가 있다. 소년은 언제나 외톨이처럼 혼자 지낸다. 누나도 남자들과 어울린다고 소년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어머니도 일 때문에 바빠서 소년과 놀아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소년은 항상 무언가 만든다. 영화의 시작에서 소년은 이글루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누나의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이글루가 부서진다. 해맑게 웃으며 뛰놀던 소년은 이글루가 부서지자 곧 울음을 터뜨린다. 소년은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누나방에 있는 소중한 물건들을 부서뜨리고 방을 마구 어지럽힌다. 그리고 곧 후회한다. 그렇게 후회할 걸 알면서도, 소년은 누군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무언가를 부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자신이 저지른 만행(!)을 후회하며 침대에 누워있는 소년. 영화가 시작된 지 5분이 조금 지난 시점이지만, 앞으로 영화가 흐르며 등장할 장면들이 이 시점에서 거의 대부분 작은 소품들로 대유되어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무언가 짓느라 바쁜 레고 인형들, 자그맣게 만들어진 나무둥지 안에서 서로 엉겨붙어있는 레고 인형들, 돌돌 말려있는 갈색 실타래. 작은 돛단배 모형.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구본 아래 금속판에 새겨진 글귀. 'To Max, Owner of this World. love Dad.' 그 글귀를 읽은 소년은 작은 돛단배를 집어들고, 파란색 이불 위로 배를 저어 나간다.
 몇몇 시퀀스가 지나고, 소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있는 어머니 곁에 어슬렁댄다. 업무상의 통화로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어머니의 발 아래 누워 어머니의 발을 만지작 댄다. 어머니는 결국 귀여운 아들에게 가볍게 대화를 건다. 자신의 발치에 누워있는 아들에게, 아무 이야기나 해보라고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소년은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걸어다니는 건물들과, 그 건물들을 깨물고 송곳니가 빠져버린 흡혈귀, 그리고 송곳니가 빠져 더이상 뱀파이어 노릇을 할 수 없는 흡혈귀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리는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 장면에서 소년이 이야기하는 걸어다니는 건물들과 흡혈귀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한 무엇처럼 보이지만, 이는 맥거핀에 불과하다. 관객들은 소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에 집중하며, 그 이야기가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복선이 되지 않을까 살핀다. 하지만 우리는 의자에 앉아 있는 어머니(분석자)와, 푹신한 양탄자에 편히 누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년(피분석자)의 구도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프로이트의 자유 연상 치료를 은유한다. 자유 연상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창시된 심리학 기술로, 환자들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든 말하도록 하는 기법이다. 프로이트는 환자들로 하여금 명백하게 중요하지 않거나 잠재적으로 환자를 압박할 수 있는 혼란스러운 기억이 될지라도 그런 것에 관계없이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영화는 아직 환상 단계에 진입하지도 않은 극초반의 지점이지만, 다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심리 상담을 받는 듯한 어머니와 아들의 구도를 보여줌으로써 소년을 프로이트 심리학의 피상담자 층위로 옮겨두었고, 어머니의 발목을 만진다는 점에서 츠베탕 토도로프의 견해를 가져온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에 따르면, 토도로프의 환상공식은 "나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것이 있다고 믿는다"는 부인(denial)으로 압축된다. 아이는 엄마가 아빠의 그것과 유사한 성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것이 있다는 가정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는 이 분열된 태도를 엄마의 성기와 유사한 대체물-예를 들면 두려움과 호기심 속에서 엄마의 치마 밑에서 속곳을 들여다보려 할 때 맨 처음 마주치는 맨살의 발목-에 대한 집착으로 유지하면서 해소한다. 토도로프의 환상개념은 결국 "애매성을 확실성으로 대체하는 과정에 대한 시나리오"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영화는 끊임없이 프로이트의 영역에서 소년을 행동하게 만든다. 그리고 관객이 소년을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읽도록 만든다. 그것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씬은 어머니가 애인으로 보이는 남성과 집안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때, 소년이 테이블 위로 올라가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소리치고, 명령하고, 화를 내는 씬이다. 이는 아이가 유년기에 어머니를 얻기 위해 아버지와 같은 위치를 쟁취하려고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연상시키고, 이 개념이 아니고서는 이 장면을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게다가 소년은, 바로 직전의 시퀀스에서 "다양한 이유 때문에 지구는 먼 미래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선생님의 말마저 들은 상태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에 아버지는 등장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소년에게 남긴 글귀는 등장한다. 그것은 일종의 지향점으로서 소년에게 존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소년은 'Owner of this World'가 되어 아버지와 동등한 위치에 서거나 혹은 아버지와 동일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서 들은 것처럼 이 지구(world)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소년은 충격을 받고, 집에 들어와 방에 텐트를 새로 치고 책을 쌓아 로켓발사대 같은 것들을 만들어 그 불안을 억압하려고 한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는 애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소년에게 관심이 없다. 이 시점에서, 소년의 리비도(libido)는 폭발한다.
 그렇게 폭발한 소년은 어머니에게 "Woman, feed me!"와 같은 대사로 군림하려 하고, "I'll eat you up"이라는 대사로 유아적 리비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그것은 근친상간의 욕구마저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폭발 이후, 소년은 어머니에게 심하게 꾸중을 듣고는 집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어머니에게서 도망간다. 이 때 소년은 동물 형상의 옷을 입고 있고, 이후 이 의상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머니에게서 도망친 끝에, 소년은 숲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소년은 어머니가 밉다면서 소리치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앰비밸런스(ambivalence)적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는 물가에 띄워진 돛단배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간다. 망망대해에서 며칠을 보낸 소년은, 거친 파도를 거쳐 어떤 섬에 도착한다. 이쯤에서 관객들은 이 영화가 환상(幻想)을 이야기하는 영화임을 깨닫는다. 후기 프로이트, 라깡에 이르러 환상은 상징적 영역과 실재 사이의 접점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소년이 배를 타고 그 섬에 닿아 겪는 이야기들은 모두, 이 접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상징적 영역과 실재, 삶과 죽음, 욕망과 주이상스, 주체와 분신의 접경지대에 있는 환상의 이야기.

 섬에 도착해 소년이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닥치는대로 무언가 부수고 있는 괴물들(wild things)이다. 그런데 그 괴물들이 부수고 있는 것은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거대한 실타래다. 소년의 방, 돛단배 모형 옆에 있던 갈색 실타래와 같은 모양이다. 캐롤이라는 이름의 괴물은 주변의 동료들을 집어던져서 실타래를 부순다. 동료들의 표정은 그리 달갑지 않은 표정이다. 그러다 캐롤은 갑자기 아무도 자기 편이 되어주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소년은 달려가서 캐롤을 도와 실타래를 부순다.
 소년은 그렇게 괴물들을 만났다. 캐롤, 주디스, 아이라, KW 등등 괴물들은 각각의 성격을 갖고 있다. 캐롤은 사납고 거칠지만 호탕한 면이 있고, 주디스는 남을 잘 비난하고 괴팍하지만 원래 나쁜 괴물은 아니다. 염소 꼴을 하고 있는 괴물은 소심하고, 닭 꼴을 하고 있는 괴물은 자주 이용당한다. 물소 꼴을 하고 있는 괴물은 지나치게 말수가 적고, KW라는 이름의 괴물은 활발하다. 관객들은 영화가 흐르면서, 캐롤과 KW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남자괴물인 캐롤은, 여자괴물인 KW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는 눈치다.

 소년은 괴물들에게 잡아먹힐(be eaten) 뻔 하지만, 자기가 고대 바이킹의 왕이었다가 이곳으로 왔다는 허풍을 떨어 위기를 모면한다.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이 허풍에 속아넘어간 것은 캐롤 뿐이었다. 나머지 괴물들은 그 허풍에 속아주는 척 하며 소년과 어울린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소년은 괴물들과 관계를 맺는다.
 소년이 왕으로서 첫 번째로 내린 명령은, 난동부리면서 놀기(wild rumpus)였다. 소년과 괴물들은 날이 새도록 숲을 뛰어다니며 나무도 부수고 서로를 때리고 집어던지면서 재밌게 논다. 그러다 괴물들끼리 서로 엉켜 덩어리가 된다. 소년은 그 덩어리 속에 갇힌다. 아니, 갇힌다기보다는 영화의 첫 장면 이글루 안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처럼, 괴물들 속에서 웅크린다. 그리고는, KW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시간을 갖게 된다. KW와 소년이 나누는 대화는, 여기 사는 괴물들과 헤어져 홀로 살려고 하는 KW에게, 떠나지 말고 같이 지내자는 이야기였다.

 KW와 소년이 서로를 바라보고 응시하고 있는 구도, 이는 원초적 만족의 체험, 즉 엄마의 응시나 따스한 목소리 등을 형상화한 미장센이다. 어두컴컴하고 이글루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마주하고 있는 어머니 같은 괴물(thing). 그리고 소년은 그 괴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떠나지 말라고, 그리고 항상 이야기하고 다니는 밥과 테리가 여기에 있는 괴물들보다 더 좋냐고.(KW는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는, 소년은 괴물들의 털뭉치 속에서 잠든다.
 이쯤되면 관객들은 이 괴물들이 결국 소년이 만들어낸 환상의 생명체일 뿐이고, 그 공간 또한 소년이 만들어낸 환상의 공간임을 인식하고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환상은 소년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물의 이미지가 차용되어 있으며, 소년이 겪은 경험의 파편들도 어느 정도 녹아 있다. 소년의 내면에서 구조화된 공간인 환상의 영역이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소년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이 환상은 꿈에 가깝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소년은 캐롤이 지니고 있는 이상향을 알게 된다. 그것은 모두가 한 마을에서 옹기종기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 그래서 캐롤은 외딴 동굴에 아름다운 마을 모형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것을 알게 된 소년은 왕(!)의 권력을 이용해 괴물들에게 실제 마을을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거대한 실타래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소년의 말에 따르면, 외부의 낯선 존재가 이 실타래 안으로 들어오면 죽는다(brains cut out).
 영화가 중반을 지나면서, 조금씩 갈등이 표출된다. 지나치게 친한 캐롤과 소년을 다른 괴물들이 시기하고, KW가 밥과 테리라는 이름의 올빼미 두 마리를 보금자리로 데리고 오면서부터다. 특히 밥과 테리는, 말을 못하고 그저 꽥꽥 지저귈 뿐인데, 소년과 캐롤을 제외한 다른 모든 괴물들은 그 올빼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즐거워한다. 그 모습을 본 캐롤은 화가 치민다. 그리고 외부인이 건물로 들어오면 죽어버린다고 말한 소년에게 왜 올빼미들이 죽지 않느냐고 따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두 마리의 올빼미인 밥과 테리는, 소년이 현실 세계에서 맞닥뜨렸던 어머니의 애인을 상징하는 듯하다. 어머니의 애인은 올빼미처럼 밤에 찾아들어, 소년이 알아들을 수 없게 어머니와 귓속말을 주고받은 바 있다.

 어쨌든 이 지점에서부터 캐롤은 소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진짜 왕이 맞는지. 왕으로서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있는 게 확실한지. 의심한다. 그리고 소년과의 사이가 나빠진다. 소년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한 가지 수를 낸다. 각자 편을 나누어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자신과 캐롤, KW, 닭 모양을 한 더글라스가 착한 팀(good guys)을 맡고 나머지가 나쁜 팀(bad guys)이었다. 그리고 눈덩이가 아닌 모래덩이를 집어던지며, 마치 눈싸움을 하듯이 전쟁을 벌인다. 소년은 즐거워한다.
 관객들은 이 전쟁을 통해 서로의 갈등이 해소되리라고 기대한다. 캐롤과 KW가 같은 편에 있으니, 서로 협동을 하다 그간의 섭섭함을 싹 잊고 즐거운 결말을 맞이할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지나치게 심한 장난을 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감정이 상해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 전쟁의 형태를 띤 역할 놀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주이상스가 이뤄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씬이다. 즐거움이 일정한 선을 넘었을 때 즐겁다기 보다는 불쾌감을 느끼는데, 주이상스는 이런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멈출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이상스는 금지를 넘어가려는 충동이고 이로 인해 쾌락을 추구하는 원칙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것으로 환원되는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제 캐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괴물들이 사는 섬으로 표현된 공간의 상징적 의미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캐롤이 화가 나서 소년을 죽이려 들자, 소년은 도망가고, 결국 KW의 뱃속에 숨는다. 소년은 KW의 뱃속에서 캐롤과 KW가 나누는 대화를 듣는다. 캐롤은 모든 일들이 자신의 맘처럼 되지 않아 화가 났고, 모두와 함께 어울릴 수 없어서 화가 난 것이었다. 캐롤이 슬픈 표정으로 떠나가고, 소년은 KW의 뱃속에서 바깥으로 꺼내진다.

 이제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이 환상의 공간 속에 살고 있는 괴물들은 소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여러 자아의 화신들이고, 그 중에서도 캐롤은 자신과 가장 닮아있는 자신의 분신이다. 그리고 KW는 소년의 어머니와 닮아 있고, 캐롤(즉 자신)이 사랑하고 원하는 괴물이다. 또한 KW의 뱃속에서 마치 신생아처럼 꺼내지는 소년의 모습은 그 자체로 KW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렇게 꺼내진 소년은 곧장 캐롤이 마을 모형을 만들어둔 동굴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곳에 캐롤은 없고, 다만 다 부서진 마을이 있을 뿐이었다. 소년은 그 모습에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짓지만, 그 폐허를 복구한다거나 캐롤을 위해 눈물을 쏟는다거나 하는 제스쳐는 취하지 않는다. 그저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소년은 그 환상의 섬도 떠나려 한다. 처음에 타고 왔던 배를 다시 찾아,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운다. 그리고, 떠난다.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슬피 우는 괴물들을 뒤로 한 채로.

 현실로 돌아온 소년은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소년을 끌어안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소년은 꼬질꼬질하게 때가 탄 동물 옷을 입고,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먹는다. 어머니는 케이크를 먹는 소년을 바라보다가 잠이 든다. 소년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웃음짓는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종언을 이야기하며, 이 콤플렉스는 무의식적으로 버려진다고 했다. 즉, 무의식에 의해 억압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까지 막연했던 의식과 무의식(괴물들이 사는 환상의 섬)의 경계가 분명하게 형성된다고 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동화가 원작이다. 원제는 <Where The Wild Things Are>로, 번역처럼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아니다. 원제의 'Thing'이 가지는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소년이 처음으로 괴물들과 조우할 때, 괴물들도 소년을 "Wild little th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괴물들이 소년을 Thing으로 부르고, 영화의 제목이 괴물들을 Thing으로 부르는 것에서, 관객들은 소년과 괴물이 같은 존재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어찌되었든,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번역은 무언가 좀 부족하다. 
 
 동화책을 직접 보진 않았지만, 동화에는 소년이 밤사이 배를 타고 괴물들이 사는 섬에 갔다가, 그만 지겨워져서 괴물들의 협박과 회유를 물리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전체적 인과 관계는 책과 영화가 비슷하다고 하지만,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영화에 좀 더 많은 메시지를 담았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에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대입시키는 것이 절대 허황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감독은 이 영화가 그들의 분석학을 따라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노출시킨다. 그리하여 이 영화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그렇게 읽어야 더 잘 이해될 수 있으며, 어쩌면 반드시 그렇게 읽어야만 읽힐 것이다.

덧글

  • 다크엘 2011/04/28 20:06 #

    개인적으로는 이 동화를 처음 보고 놀랐더라지요..
  • 레네트 2011/04/28 20:38 #

    동화읽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영화도 찾아 봤었던...
    개인적으로 맥스 베어브릭을 갖고 싶었지만 가격이orz
    어쨌든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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