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6 16:59

공리(功利)의 역설, <언싱커블> 영화와 책과 음악

※ 스포일러 주의

  아랍계 테러범이 미국의 대도시 세 군데를 골라, 핵폭탄을 설치했다. 폭탄이 터지면 수천명의 사람들이 죽는다. 미국 경찰은 폭탄을 설치한 테러범을 체포했다. 아니, 그 테러범이 스스로 잡혔다. 그리고 테러범은 폭탄이 숨겨진 곳을 말하지 않는다. 테러범은 다만, 미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대국민담화를 한다면 폭탄의 위치를 밝히겠다고 한다. "첫째, 더 이상의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이슬람의 그 어떤 국가 및 괴뢰, 독재정권 등에게 하지 않겠다. 둘째, 전 이슬람 국가에서 미군을 철수 시키겠다."

  이슬람인의 입장에서 요구는 타당했고, 미국 입장에서도 일면 이행 가능한 요구였다. 하지만 미국은 수천 혹은 수만의 희생보다 지금껏 이어온 대이슬람 외교 정책의 유지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테러범의 요구를 들어줄 순 없었다. 그래도 폭탄의 위치는 알아야 했다. '본래의' 법에 따르면, 테러범이라 할지라도 고문은 할 수 없고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폭탄이 며칠 내로 터지는 상황에서, 미 정부는 테러범을 고문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도덕철학자이자 법 개혁가인 벤담의 공리주의의 핵심이 이 지점에 도사리고 있다. 공리주의의 핵심 사상은 간결하며, 언뜻 들어도 합리적이다.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 하는 것,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벤담에 따르면, 옳은 행위는 '공리(功利)'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이다. 그가 말하는 '공리'란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을 막는 것 일체를 가리킨다. 공리가 곧 정의이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라는 책에서 공리주의를 설명한 것에 따르면, 공리를 극대화한다는 원칙은 개인만이 아니라 입법자에게도 해당한다. 정부는 법과 정책을 만들 때,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따라서 입법자들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한 뒤에 총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많은 행복을 얻을까?"

  그레고 조단 감독의 영화 <언싱커블Unthinkable>의 이야기 속에서도, 인권과 도덕을 몹시 소중히 생각하는 FBI 요원(캐리 앤 모스)마저도, 테러범의 인권보다는 다수 미국인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적극적으로 고문에 가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적어도 고문 앞에 침묵했다. 이는 바로 공리주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문은 테러범 개인에게 고통을 주고, 그의 행복 또는 공리 수준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그러나 폭탄이 터지면 죄 없는 수천 명의 목숨이 날아가고, 그 피해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사칙연산이다.
△ 제레미 벤담

  게다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FBI 요원이 테러범을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도 그녀는 공리주의적 생각 안에 있다. 테러범에게, 그의 처자식이 가지는 비중이 이슬람 민족이 가지는 비중이나 종교가 가지는 비중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설득시키려 무던히 애를 썼던 것이다. 고문을 당하던 테러범이 불현듯 "사실 폭탄은 가짜였다"라고 말하면서, 지금껏 충돌하던 이성과 비이성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는 생각을 관객들이 가지게 되는 순간도, 역시 공리주의적 생각 범주 안이다. 이후, "사실 폭탄은 진짜였고, 시간은 정말로 얼마 안 남았다"라는 것이 거의 확실한 명제가 되는 순간,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테러범의 부인과 아이들까지 동원해 그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이마저도 어느 정도 정당성을 지닌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리주의가 가진 두드러진 약점은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리주의자들은 오직 만족의 총합을 가지고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는 개인을 짓밟을 수도 있게 된다. 공리주의자들에게 개인은 단지 사람들의 선호도를 더할 때 계산되는 한 항목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돌아올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너는 테러범의 인권을 위해서 수천명의 무고한 시민이 폭탄에 찢겨 죽게 만들겠다는 것이냐?"

  이 질문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쉬운 질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리'를 삶과 입법에서 최고의 가치로 매기고 있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어떨까? "죄 없는 어린 아이를 고문해야 수천 수만명이 살고 있는 도시의 핵폭탄이 터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겠는가?" 혹은 "당신이 평생동안 끊임없이 고문당해야만 대한민국 땅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욱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세계 경찰국가가 되고, 국민 모두가 최고로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면?"
  <언싱커블>은 솔직히 그렇게 혼란스럽거나, 인간이 지닌 야수성을 까발린다거나 하는 영화로서는 약간 부족하다. 관객들이 인권과 도덕이 가지는 비중에 대해 갈등하기에는 눈 앞에 있는 테러범이 지나치게 의도적이고 교조적인 행동을 하고, 폭탄 설치 자체에 대한 진위를 두고는 의심의 여지가 한치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부에서는 실제로 핵폭탄이 터진다는 암시를 던진다. 요컨대, 관객들이 테러범에게 '인류의 차원에서' 적의를 품게 되는 것이다. 최근 개봉하여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의 주인공처럼 차라리 아랍인이라서 미국인에게 혐의를 받고, 그것 때문에 고문을 당했다면 오히려 미국인이 지닌 가식이나 야수성을 잘 드러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에서 테러범의 아이들까지 테러범 눈 앞에서 고문해야 되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에서 고문기술자마저도 갈등하는 모습을 그렸던 것은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리주의적으로 계산하는 사고 방식은 언뜻 합리적인 것 같지만, 언제나 인간의 기본권을 저버리는 유혹에 빠질 수 있으니 신중해야만 한다. 공리주의적인 사고 방식이라면 오래전 노예제도를 폐지하려는 시점에서도 "노예를 해방시켜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이익보다, 노예제도를 유지해서 얻는 주인들의 행복과 경제 발전의 효율이 더 크다"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영화 <아저씨>에서 인신매매범이 말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장기를 떼서 얻는 돈이 얼마인지는 생각해봤어요?"라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 될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공동체의 삶, 그리고 정의에 있어서 과학적인 계산방식은 때때로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드는 결론을 도출해낼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 "쇼핑몰이었다고! 53명이 죽었어! 53명이 찢겨 죽었다고!" … "난 조국을 사랑하는데 너희 국민이 망치지! 난 내 종교를 사랑하는데 너희 국민이 침뱉지! 생각해보면 모르나, 내가 뭐하려고 여기 있는지? 일부러 잡혀왔어! 난 겁쟁이가 아니기 때문이야! 난 압제자를 두 눈으로 직접 보려고 왔어! 날 야만인이라 하겠지. 그럼 당신은 뭔데? 50명 좀 넘게 죽었다고 내가 울길 바랐나? 너희 국민은 매일 그 숫자를 죽여! 느낌이 어때, 브로디? 이건 내가 아니라 당신이 느껴야 하는 거야!"



덧글

  • 수시렁이 2012/02/21 00:24 #

    핵심을 놓치시네요. 의도적으로 안 쓰신 건가요? 정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미군을 빼면 됐어요. 그 당연한 답을 은폐하려고 이것 저것 둘러대는 게 많은 겁니다. 초점이 다수의 이익과 개인의 인권 사이의 긴장으로 맞춰지는데, 이건 그 갈등 자체를 발생시킨 원인-미국의 침략전쟁을 은폐하려는 전략입니다. 영화에서 까발리는 건 그거예요. 샌델을 비롯한 더러운 인간들이 지저분한 논변으로 은폐하려는 것이 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 논변에 의존해 자신의 더러운 삶을 정당화하려는 중간계급을 철저하게 비판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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