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첫 시작을 할레드 호세이니의『연을 쫓는 아이』로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의 끝자락을 같은 작가의 책『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작가는 그의 데뷔작인『연을 쫓는 아이』에서도 인물 간의 갈등이 이루는 씨줄 위에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라는 날줄을 덧대어 환상적인 작품을 뽑아낸 적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두 번째 소설도 전작과 비교해 그 구성에서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하지만『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전작과는 달리 아프간 여성들의 문제에 좀 더 돋보기를 가져간 작품이다.
아프간에서는 항상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났다. 군주제에서 벌어진 쿠데타와 공화국의 수립, 소련의 침공, 그리고 해방, 연이은 내전과 탈레반의 독재. 급박하게 돌아가는 아프간 역사의 포연 속에서 여성들은 점점 더 두꺼운 차도르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영화인 <천상의 소녀>에서도 그 처참한 실상을 엿볼 수 있다. 여성 혼자 길거리를 다니다가는 매를 맞고 쫓겨나기 일쑤인 아프간 사회에서, 전쟁 통에 집안 남자들이 모두 죽어버린 상황은 말 그대로 막다른 골목이었다. 탈레반이 엄포한 법에 따르면 여성들로만 구성된 가정은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영화는 딸의 머리를 짧게 깎고 남장을 시켜 거리로 내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문학의 힘은 영화의 그것보다도 훨씬 컸다. 영화의 참혹한 영상을 보며 느꼈던 나의 감정은, 소설이 불러일으킨 감정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행복의 절정에 있던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한계 아닌 한계에 부딪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는 그의 소설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지점이나, 라일라가 마리암의 흔적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가슴을 죄는 고통마저 느꼈다. 이러니 마리암이 처형당하는 장면에서는 오죽했을까.
또한 이 소설은 나에게 아프간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가 쌍둥이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익히 보아왔지만, 소설에서 아프간 사람들이 그 충격적인 장면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는 장면에서는 나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쌍둥이빌딩의 테러와 미국의 선전포고에 대한 아프간 사람들의 입장과 생각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통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도 할레드 호세이니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조국이 처한 실상을 고발하고, 하나의 ‘통계’가 되어버린 아프간 인민들의 죽음을 하나의 ‘비극’으로 바꿔놓는 그의 작업은, 일종의 밥벌이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숭고한 일이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소설이 기대된다. 그의 다음 소설이 그리는 아프간의 비극은 지금 시대가 아닌 오랜 옛날 일을 더듬는 작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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